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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리벽속의 할머니 * 장묘문화 공모전 수상작품. 고등부 최우수상

  • 작성자
    임명묵
    작성일
    2007년 7월 19일
    조회수
    1099
  • 첨부파일
     *** 유리벽속의 할머니 ***



            고 등 부   최우수상 

                 한승아(여의도여자고등학교)


띄약볕이 쏟아지는 작년
그 무더운 여름.....
난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한 분 뿐인 우리
외할머니를 하늘 저 멀리 보내드려야 했다.

직장암으로 투병하시다가
갑자기 돌아가신 것이다.
눈물은 흘러도 흘러도 마르질 않았고
무엇보다 날 힘들게 한 것은
가족들이 너무 슬퍼하는 모습이었다.


죽는다는 건
영원한 이별이라서 정말 슬픈 일이구나.....
결국 슬픔은 살아 남아 있는 사람 들의 몫이구나......
난, 태어나서 처음으로 삶과 죽음이
어떤 것인지 새삼 생각하게 되었 다.

장례를 치르는 동안
어른들은 슬프다고 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문상객을 맞고, 수의와 관을 준비하고

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외할머니를 어디에 모실지 정하는 일이었다.

난 당연히
18년동안 틀에 박힌 듯 생각해 왔던
묘지를 생각했었다.

하지만 의외로 외할버지 께선
외할머니를 납골당에 모시고 싶다고 하셨다.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할머니를 가장 사랑하시던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화장하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엄마와 외삼촌 모두 묵묵히
외할아버지 뜻에 따르기로 하셨다.

하지만 그 때까지도
난 그게 너무 허무한 것 같아
어른들의 뜻을 이해 할 수가 없었다.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신지 3일때 되던날
우리 가족은 외할머니를 모시고 벽제로 향하였다.

화장장이란 곳은 어떤 곳일까...?
매캐한 연기 속에 오열하는 사람들...
또 뜨거운 불속에 타들어가는 관들...
이런 무시무시한 생각에
창밖에 쏟아지는 비만 바라보고 있었다.

벽제까지는  2시간 남짓 걸렸다.
난 지쳐 잠들었다가 일어나
쏟아지는 빗속을 지나 화장장 안으로 들어갔다.
비가 내려 더욱 처량해 보이는
할머니의 관에 마음이 아팠다.

화장장안은 붐볐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화장을 하나 하는데 놀라울 뿐이었다.

하지만 무 엇보다도
내가 가장 놀라왔던 것은 화장장의 시설이었다.

벽제에 오면서 생각했던
나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것에 놀라웠다.


입구에서 보면
여기가 어딘지 알아 볼 수 없을 만큼
깨끗하고 쾌적한 모습이었다.

화장을 하기 위해
이제 외할머니를 멀리 보내 드려야 했다.
화장장에서 일하는 아저씨들께서
거수 경례로 맞이하여
아주 정중하게 할머니를 모셨다.

우리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관이 들어갈 문이 열리고......
그리고 그 문은 닫혔다.

이제는 정말 할머니를 다시는 볼 수가 없었다.

유리창을 부여 잡고
가족끼리 부둥켜 안고 울어버렸다.
아니.. 울지 않을 수 없었다.

두 시간 뒤 문은 열렸다.
모든 것이 사리지고
새 하얀 할머니의 유골만이 남았다.

화장장에서 일하는 아저씨들은
아주 정성스럽게 유골을 모아
상자에 넣어 유리창 밖의
우리 가족에게 건네 주었다.

다시 외할머니의 유골을 모시고
추모의 집으로 갔다.
3층  63호실...
지금도 못 잊는 우리 할머니가 계시는 곳이다.

작은 방마다
벽에 온통 층층이 유리 칸막이가 있었고
우리는 외할머니를 둘째층에 모셔 드렸다.

유리 벽 속의 웃고 계시는

할머니의 모습.....
할머니 여기서 오래오래 아픔없이 사세요.....
할머니, 꼭 자주 찾아올께요.
슬픈 마음을 고이고이 접고 건물 밖으로 나왔다.

넓고 깨끗한 추모의 집엔
따로 차레나 제 사지내는 곳도 있었고
고인의 유골을 모셔논 유리 창엔
사진이나 꽃을 달아 놓을 수 있게 하였다.

또 사이버 추모의 집도 있어서
컴퓨터로도 추모의 집을 둘러 볼 수 있게 해 놓았다.

우리가 추모의 집을 떠나는 그 때까지도
비는 멈출 줄 몰랐고
만약 외할머니를 땅에 묻어 드렸다면
밤새 비를 맞아야 할 외할머니가 걱정되서
우리 가족은 발길을 떼지 못 했을 것이다.

그렇게 8개월이 지났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추모의 집을 두번 정도 더 찾았다.

할아버지께선 자주 찾아가시는데
외할머니를 땅에 묻어드렸다면
싸늘하게 변해 갈 모습에
더 슬퍼하셨을지도 모르겠다.

요즘들어 자주 외할머니 생각이 난다.

화장장 건설을 놔두고

우리 지역은 절대 안된다는
이기주의 팽배로 돌아가신 분들은 가실 곳이 없다.

벽제 한곳에서
그 많은 고인들을 모시기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그렇다고 묘를 쓸 수도 없다.

전 국토가 변해가는 이 상황에서
앞으로도 계속 묘를 쓴다면
나중에 우리 후손대에는
살아 있는 자의 땅보다
죽은 자의 땅이 더 많아질 것이다.

또한 묘를 쓰면 시간이 흘러
나의 손자, 또 다음 손자 때에는
그 많은 조상의 묘를 모두 돌 보아 줄 수가 없게 된다.


지금 같이 바쁠 때에도
일년에 한, 두번 찾아가는 것도 어려운데
그 많은 조상의 묘에
떼를 입히고 가꾸는 것을 바라는 것은
너무 큰 부담이 되는 것이 아닐까?

또 나중에 돌보아 주지 않아
버려진 묘가 되어버리고

누가 묻혔는지 알 수도 없어
파헤쳐 지면 그 보다 더 허무할 수가 있을까?

그런 면에서는
화장은 묘지 문화보다 훨씬 장점이 많다.
무엇보다

후손이 자주 찾아가 보지 못할 때에도
납골당에서

관리를 해주기 때문에 걱정이 덜고
무덤앞에서 술 마시고 소리 지르고 하는
추잡한 성묘 문화가 없어져서 좋다.

또 묘의 넓이는 약 세평가량 하는데
납골당은 세평 정도의 공간의
300여개의 유골을 모실 수 있으니
국토가 묘지화 되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그런데 겨우 내가 사는 곳에서
곡소리가 듣기 싫어서

내 집 값이 떨어져서
화장장 건설을 반대한다는 것은
단순한 집단 이기주의에 그치지 않는다.

사람은 모두 죽게 마련인데
화장장 건설을 반대하는 것은
죽은 사람을 홀대하는 것이나 다 름없다.

또 아쉬운 점은 화장을 해도
납골당에 모시지 않고
다시 묘를 쓰는 경우가 있는데
그렇게 되면 화장을 하는 진정한 의미가 사라진다.

화장을 한 후 가족 납골당등에 안치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가족이 죽어

몸도 마은도 지치고 아플 때
사랑하는 가족을 모실 곳이 없다면 얼마나 슬플까?

이제는 나를 위해서라도
또 내 후손들을 위해서라도
우리의 장묘문화는 바뀌어야 한다.

지금과 같은 추세로 묘지를 쓴다면
전국토가 무덤으로 뒤덮일 날은 얼마 남지 않았다.

또한 산 사람이라도
편히 살겠다는 이기주의도 버려야 한다.

산자와 죽은 자는 다를 것이 없다.

단지 지금 육체가 존재하느냐와 마느냐의
형이하학적인 관점에서 다를 뿐이지....

지금 우리 곁에 없어도
내 가족이고 친구이고, 이웃인 것이다.


오늘 따라 유리벽 속의 외할머니가 그리워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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