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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읽어보는 역사 (하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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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거꾸로 읽는 역사 (하나)
등록 : 2011. 2. 1 (부산 금정구청 > 열린금정 > 자유 게시판 )
작성자 : 안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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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거꾸로 읽는 역사 (하나)
등록일 : 2010. 6/11 ( 보건복지부> 자유게시판)
조회수 : 689
작성자 : 안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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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단상(短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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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거창군 탐방

거창군에는 양민학살이 있었다고 한다.

부산시 공직자로 근무하면서 같은 배경에서
호남사람이 불평등의 조건에서 파면되어 나가면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 부산 동래구 청룡동 사무소, 주민등록증 분실사고, 호남이 고향인 김영구씨 - 박영수 부산시장, 옥성선 동래구청장 당시(1976년),
이후 박영수 시장님 부인이 돌아가셔서
동래구청 여직원들이 온천1동 시장관사에 문상을 간 기억이 난다 >

해경함장으로 1974년(5월 28일), 육영수 여사께서 돌아가신 해,
바다에서 근무 중 배가 침몰되어 실종된 나의 아저씨, * 안정열씨.
동해(속초 부근) 바다에서 근무 중 함포사격으로 배가 침몰된 것이다.
가족 중에서 가장 똑똑하고 용감하셨다.
조달청에 다니는 여직원과 결혼 후 자녀 둘을 낳고 화목하게 지내시다가 실종된 것이다.
“금강산도 가고 이산가족도 만나는데 영 소식이 없는 걸 보니
아마 그 때 죽었는가 보다...” 고 1년 전에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참 어처구니가 없는 생각이었다.
당시에는 북한의 소행이라고 신문에 대문짝 같이 나왔었다. (나도 이제 어른이 다 되어가는구나! )

- 내가 통신대학에서 공부하면서 간부로 일하고 졸업하기 한해 전(1983년), 해외연수로 동남아시아에 나가기 전,
아웅산 폭발사건으로 한국의 각료가 대부분 죽었다. 홍콩의 잡지와 한국 국내의 신문기사가 이 사건을 대서특필 하였다 (정부 제안서 42쪽 ~ 43쪽 언급)

“골든카드가 비싸다”했지만 제안자는 그리하지를 못하고 있다.
제안자는 제안과 관련하여
각시도의 자유 게시판의 글을 올릴 때,
특히 광주, 제주의 게시판이 열리지를 않으면 용서하지 않는다.
문민정부에서 “역사 바로 세우기를 하고 나서야 통일을 할 수 있다”고 귓전을 스치던 그 말의 의미가 요즈음 어렴풋하게 이해가 된다.

거창군이 사과를 상징으로 하고 있고
또 적정의 당도를 지닌 사과(홍로)를 생산하는 것 같아서
한두달 전 인터넷으로 더듬어 보니 초대군수가 “안성수”로 되어 있고 또 그 이후 군수들의 재임기간이 2년을 못 넘기고 있었다. 각 구군도 별반 다르지가 않다.
지방자치제 실시 후 민선단체장이 “임기동안은 안심하고 일 할 수 있다”는 말들이 들리더니 그 말이 그 말인가 보다.

문세광이 일본의 조총련계로 1974년 광복절 식상에서 육여사를 쏘았다.
박정희 대통령이 군인으로 혁명을 일으켰으므로
문씨의 성을 가진 사람이 장기 집권하는 박대통령의 부인을 쏜 것이다.
그래서 이후 1988년 금정구청 가정복지과장인 박재춘과장이 금청구청 개청식 날,
자신이 모셔 온 꽃선생(문00)이 꽃꽂이한 공금 30만원을 중간에서 잘라 먹은 것일까?
박정희 대통령이 또 일제 강점기 시대에 괴뢰국인 만주국 군관에 지원하며 혈서로써 충성을 맹세하였다고 ?
요즈음 신문에서 터져 나온 기사다( 2009.11/6, 한겨레, 2009.11/7, 한겨레)
나의 이종언니들 중에서 문씨 집안에 시집 간 이종언니(김00)가 가장 먼저 죽었다(부산 부민 병원에서, 2008년 ). 65세도 넘기지 못하고.
또 나의 초등교 동기생 문영애에게 최근에 비만이 와서 나는 노래를 부르고 있다.
나는 제국주의를 편들지 않는다. 그 당시 그것이 대세였다고 하더라도...
영국에 유학가는 사람보다 미국에 유학가는 사람이 많다.
인간은 정의를 택한다. 공직자들도 인간으로서 행정의 운영에서 정의를 택했지만
택한 사람들은 퇴직을 하고 선택받은 남은 사람들이 멋모르고 희생이 되었으니
요즈음 “공직자들은 인간을 도구를 쓰지 말아야 한다”고 한다
경상도에서는 하수 도랑을 청소하는 것을 “도구 친다”고 했었다.
우리는 언제까지 저 무례한 망나니들은 두고만 볼 것인가 ?

“골든 카드”를 버린 제안자는
원고료도 없는 전자게시판에서
회한 (回恨)의 편지를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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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열씨 ------
안정열씨의 큰 형님이 안 표씨다.
안 표씨(역시 나의 아저씨다)는 오래 전, 거주지에서 통장을 하였다.

*동해........ 나의 친척 아저씨, 안동해씨에게 (젊은 나이에) 직장암이 와서 수술하고 항문을 밖으로 내었다. 나의 어머니가 직장암으로 진단 받기 이전이다.


-- 2011년 1월 29일, 글쓴이 : 제안자, 안정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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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정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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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친은 만주에서 소장사를 하다가 돌아가셨다. 그 이전 부인을 잃었다. 남은 자녀는 이들 넷이였다. 부친이 일찍 돌아가시고 큰 아들(안표씨)은 부산진구 관내에서 살면서 진양고무 고무공장에 다니면서 동생들을 공부시켰다. 바로 아래 동생이 김정열씨다. (부산) 동래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재정이 넉넉지 않아서 해양경찰의 시험을 쳤다. 나의 왕고모님(아버지의 고모님)들은 형제 중에서 이 형제(안표씨의 아버지)가 가장 똑똑하고 용감(호탕)했다고 했다. 안정열씨는 해경시험에서 수석을 했다는 말을 들었다. 성질이 호탕하여 조달청의 타자수와 연애 결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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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4년은 어떤 해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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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은 박정희 정부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1961년 5.16 군사혁명을 일으켜
1963년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헌정에 의하면 중임하더라도 70년도가 임기가 끝나고 1971년에는 정권을 물려주어야 하는 해였다.
그러나 1970년 7월 7일 경부고속도로를 개통하고,
1970년 11. 13 노동자 전태일이 분신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1972년 10월 7일 유신선포를 하였다.

1971년은 내가 부산여자상업고등학교 3학년 때인데
나는 대학에 진학을 하기 위하여 책과의 전쟁을 하였다.
상업학교를 졸업하고 취직하는 좋은 자리가 은행원인데 한국산업은행 외에는 시험으로 입사하는 은행이 없다고 들었으므로
1971년 3월 3학년에는 진학반에 들어간 것이었다.
그 때의 사회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뜻있는 인사들은 박정희 대통령이 군사혁명을 일으킨 것 자체에 대하여 공공연하게 비평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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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안서 3쪽 ~8쪽, 이론적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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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할아버지는 아들과 딸 3형제를 낳았으나 나의 아버지 혼자만 살고 둘은 어려서 죽었다.
할아버지(안금봉)는 아버지가 7살(1930년대 초) 상갓집의 음식을 먹고 돌아가시었다. 할머니(박금수)는 아버지(종갓집의 장손=종손)가 고모와 삼촌에 섞여서 성장할 수가 있다고 하여 일찍 재혼해 가셨다.
할머니의 생가도 본가와 멀지 않다. 금정구 관내이다.

요즈음 신문을 보니 1932년 4월에 윤봉길이 상하이 홍구 공원에서 폭탄을 던져 일본인을 죽였다고 했다. 그 날 그 장소가 일본 왕의 축하연.
조선의 왕이 젊어서 죽고 일어난 것이 1919년 3. 1운동이다. 미루어 보면 어린 아기들이 일찍 죽고 하니 즉 일제 치하의 한국사회가 좋지 않아 윤봉길 의사의 의거(義擧)가 일어난 것이 아니겠는가 ?

중국 만주의 연변에는 윤동주 시비가 있다. 윤동주 시인은 중국 만주에서 태어났다. 일제치하에서도 한국어로 시를 써서 일찍 죽은 대표적인 시인이다.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1961년) 홍역을 앓았다. 딸 많은 형제에서 겨우 낳은 아들(종갓집의 종손)이 2살도 되기 전, 남동생과 여동생 나 셋이서 함께 홍역을 치루었다. 어머니는 이병은 학교에 가면 죽는다고 하면서 학교에 못가게 하였다. 나는 컷기 때문에 가볍게 치루었는데 여동생 1명은 기침을 하고 폐렴 증세를 보이더니 결국 죽었다는 것이다. 나는 죽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제안서 5쪽)

--------- 2012. 5. 5,(토), 어린이날, 글쓴이 : 안정은 ------

외 등록처 (2012. 5.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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